한국의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가 심각하다, 그것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생존권의 문제다. 하지만 근본적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은 채 미봉책만이 난무하면서 사회적 절망감은 커져만 간다.

비정규직은 노동 현장의 평등권과 인권을 짓밟는, 그래서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는 최악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하지만 유럽연합(EU)처럼 근본적 처방이 나오지 않고 있다. 국내 어느 정당, 단체도 ‘동일 직장에서의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라는 EU 노동법이 명문화한 것과 같은 기초적인 원칙을 관철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의 비정규직 수 백만 시대가 되면서 결혼 및 출산 기피, 자살률 급증 등의 심각한 사태가 줄을 잇고 있는데도 정당이나 정부 등은 손을 놓고 곁가지 정책만을 제기하는 한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유럽 연합이 경제력 격차가 큰 소속국가들의 공존공영을 위해 역내 근로자의 합리적 취업을 EU노동법으로 법제화 한 것은 탁월한 업적이다. 유럽 연합 소속 국가에서는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동일 직장에서 동일한 노동을 할 경우 동일한 급여와 근무 시간, 보험 등 제공 등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유럽 연합은 28개 소속 국가 노동자들은 연합 소속 국가의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국적, 성, 종교 등의 차이로 인한 차별을 받지 않고 인권을 보장받으면서 자유롭게 취업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고 있다. 유럽의 노동자들은 EU노동법으로,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심각한 인권침해와 경제적 착취 등의 고통에서 해방돼 있다.

최근 영국이 자국에 외국 노동자들이 대거 진입하자 이들에 대한 각종 혜택을 줄이기 위해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 투표를 실시한다고 했지만 많은 회원국 등이 반대하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어 EU 탈퇴 여부는 불투명하다.

유럽연합은 역내의 경제·사회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유럽시민권제도를 도입했고 그에 따라 회원국 국민의 권리와 이익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노동자 권익 보호, ‘자유·안전·정의’ 실천을 공동의 목표로 실천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노동자 인권 보호를 위해 국제노동기구(ILO)가 1951년 만든 ‘동일 급여’ 선언을 유럽연합 인권 헌장과 노동법에 포함시켜 ‘유럽 연합 소속 국가 노동자들은 유럽연합 내 어느 곳으로든지 이동해 어떤 차별도 받지 않고 노동할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했다.

EU 노동법은 노동 현장에서 능력, 성, 종교와 신념, 연령 등을 이유로 차별받는 것을 방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법은 고용주가 동일 사업장에서 비정규직의 작업장소를 빈번하게 바꾸는 것도 금지했다. 그 결과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동일 직장에서 동일 시간을 노동할 경우 고용 기간만이 차이가 있을 뿐 동일한 급여 제공 등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EU 노동법은 유럽연합 회원국이나 기업간의 불공정 경쟁을 막고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2002년 제안됐고 영국, 독일 등은 그 비준을 지연시키다가 2008 - 2010년에야 수용했다.

유럽연합은 1,2차 대전을 겪은 국가들이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해 경제 공동체 추진에 이어 정치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 분단국의 고통과 모순이 깊은 한국이 깊이 살피고 도입해야 할 제도의 하나가 유럽연합이 실천하고 있는 노동자 권익 보호조치다.

탈북자의 정착 문제는 비정규직 차별 철폐로 해소할 수 있고 먼 훗날 통일될 경우 남북 노동자 차별 요인을 해소할 기반이 조성될 수 있다. 해외 노동력 급증에 따른 갈등 심화도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에서 그 해결책이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비정규직이 당하는 엄청난 고통과 손실은 이미 임계점을 넘어선 상태지만 거대 여당, 야당은 물론 진보정당조차 유럽연합의 관련 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치열한 노력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에만 주로 초점을 맞춘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어 신자유주의에 매몰된 정치권과 재계는 이를 갖가지 핑계를 대면서 외면하고 있다.

비정규직 근무 2년이면 정규직으로 전환을 의무화한 규정이 무력화되는 현상 속에 비정규직을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하는 것과 같은 미봉책이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무기 계약직도 비정규직처럼 정규직과는 신분상 차이가 있어 노동자간 괴리감의 해소를 통한 인권 보호와는 거리가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만 초점을 맞추는 노력 보다는 비정규직의 처우를 유럽연합과 같이 개선하는 것이 더 합당하고 실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기업 경영악화에 따른 불가피한 정리해고 등을 고려할 경우 비정규직의 처우를 유럽처럼 고용 기간만 차이가 있을 뿐 정규직과 동일하게 맞추는 것이 최상책이다. 노동 현장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대원칙만이 기업의 돈 벌이를 앞세운 자본 논리를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은 수개월 전 고용노동부의 2009∼2013년 임금현황 자료를 분석, 지난 5년 사이 300인 이상 기업의 상용직 근로자(정규직)와 임시일용직 근로자(비정규직)간의 월평균 임금격차가 3.5∼4.2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노동현장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신분 차이는 심각한 인권 침해와 함께 신종 노예계급의 양상과 고착화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비정규직 근로자가 급증해
현재 비정규직은 정부 통계로 6백만 명이 넘어섰지만 비공식적으로 1천 만 명 선에 이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07년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한 법을 마련했지만, 비정규직은 더욱 늘어나 7년 동안 비정규직이 37만여 명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비정규직 전환은 여전히 하늘의 별 따기다.

유럽연합의 경제 공동체 추진이 가능했던 것은 회원국 노동자들의 인권 보호, 경제 정의 실현 등이 첫 걸음이 된 것처럼 한국 노동시장의 정상화는 정규직, 비정규직이라는 살인적 2중 구조를 해소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경제적 이유만으로 생명과 인권을 경시하고, 기업 이익 보장을 위해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한국 사회는 자살률, 이혼률, 출산율이 민족의 존망을 걱정할 만큼 심각해지는 비극을 양산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 시민사회는 유럽공동체의 노동권 보장이 한국에서 시급히 실천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새로운 정치를 지향하는 집단이 만약 비정규직 문제를 EU 노동법의 규정처럼 해결한다면 성공한 정치 집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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