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3년 6월, 웰링턴 장군이 이끄는 영국군이 스페인의 비토리아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쳤다. 지난 해 모스크바에서 러시아군에게 궤멸당한 프랑스군이 서부전선에서 또 큰 타격을 입었으니, 나폴레옹의 몰락은 시간 문제였다. 영국, 스페인, 오스트리아 등 온 유럽이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나폴레옹의 몰락과 웰링턴 장군의 승리를 축하하는 음악이 나온다면 흥행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그해 12월 8일, 전쟁 부상자들을 위한 자선음악회가 빈 대학 강당에서 열렸고, 이 자리에서 초연된 베토벤의 전쟁 교향곡 〈비토리아의 전투, 또는 웰링턴의 승리〉에 청중들은 열렬히 환호했다. 약삭빠른 흥행사 요한 네포무크 멜첼이 기획한 이 음악회는 베토벤의 음악으로 채워졌다. 맨 먼저 연주된 교향곡 7번 A장조는 ‘술 취한 자의 음악’이란 평을 들었지만, 비통한 행진곡풍의 2악장만은 앙코르 요청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연주된 〈웰링턴의 승리〉에는 당시 빈 음악계의 스타들이 총출동했다. 작곡자인 베토벤이 지휘를 맡았고, 빈 음악계의 최고 원로 살리에리가 대포를 쏘았고, 피아노의 거장 훔멜이 북을 쳤고, 슈포어 · 슈판치히 · 드라고네티 등 쟁쟁한 음악가들이 연주에 가세했다.
먼저 드럼과 나팔 소리에 맞춰 영국군이 행진한다. 반대쪽에서 프랑스군이 등장하여 마주선다. 전투 개시를 알리는 트럼펫의 시그널에 이어 양쪽 진영이 뒤얽혀 격렬한 전투를 벌인다. ‘돌격의 행진곡’으로 클라이맥스에 이른 뒤 포성이 점차 잦아들면 비탄에 잠긴 장송행진곡이 흐른다. 이어서 후반부는 ‘승리의 교향곡’이다. 영국 국가 〈신이여, 여왕을 보호하소서〉가 등장하고, 기쁨의 함성으로 힘차게 마무리한다.
〈비토리아의 전투, 또는 웰링턴의 승리〉 Op.91 (로린 마젤 지휘 바이에른 라디오 교향악단)
https://youtu.be/-NQ55Qp78mo (음악을 감상하시려면 아래 동영상 플레이버튼을 누르시면 됩니다)
이 작품의 성공으로 베토벤은 모처럼 돈과 명예를 움켜쥘 수 있었다. 이듬해까지 세 번 더 연주됐는데, 베토벤은 그다지 인기가 없던 교향곡 8번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이 음악회들을 활용했다. 베토벤은 이 음악회를 기획 · 연출한 멜첼에게 편지를 보내 “조국의 제단에 숭고한 이 작품을 바치게 되어 특별히 감사드린다”고 했다.
〈웰링턴의 승리〉는 요즘은 특별한 행사가 아니면 잘 연주되지 않는다. 이 작품이 큰 인기를 끈 것은 작품성보다는 당시 정치 상황 덕분이었으며, 한때 혁명에 열광했던 베토벤이 국가주의에 편승하여 대중에게 영합한 건 ‘예술적 타락’이라고 혹평하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이 곡은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과 함께 유럽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념하는 흥미로운 작품으로 남아 있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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