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파동’ 이후 집권 새천년민주당 안에서는 내분이 그치지 않았다. 그 결과 2003년 11월 11일 노무현을 지지하는 ‘신주류’가 민주당을 탈당해서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열린우리당은 1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대의원과 참관인, 주한외교사절 등 각계 인사 1만5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중앙당 창당대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다.
우리당은 이날 창당대회에서 김원기·이태일·이경숙 공동의장을 선출하는 등 임시지도부를 구성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창당대회에 보낸 축하메시지를 통해 “정치개혁과 국민통합의 기치를 내걸고 출범하는 열린우리당이 무엇보다 국민통합과 깨끗한 정치를 이끄는 견인차가 되어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또 “정치자금 문제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이상 모든 것을 낱낱이 밝히고 근원적인 해결책을 찾아 정치개혁의 역사적인 전기로 삼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선거에서 지역감정을 악용하거나 이에 동조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하루속히 선거제도의 개선에 착수해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을 독식하는 잘못된 정치구도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제안했다(동아일보 11월 12일자 1면).
노무현 지지세력이 원내 제3당이 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민주당과 결별함으로써 노무현은 ‘군소정당’을 기반으로 하는 대통령이라는 처지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 노무현 탄핵소추안’ 발의
2003년 12월 19일은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지 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2004년 4월 15일로 예정된 17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점이기도 했다. 그날 ‘탄핵의 불씨’가 되는 발언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노무현 대통령은 19일 “우리는 승리했지만 대통령 선거가 끝나지 않았던 모양”이라며 “그들은 승복하지 않았고 지속적으로 나를 흔들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날 노 대통령의 발언을 노골적인 정치선동이며 사전 선거운동이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노 대통령은 “시민혁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며 “(여러분은) 수천억 원씩 든다는 대선자금을 수백억 원으로 줄여줬으며 우리는 이 승리를 시민혁명이라 부른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7시 반경부터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이 중심이 된 개혁네티즌연대가 주최한 대통령 당선 1주년 축하 기념식 ‘리멤버 1219’ 행사에 참석해 이 같이 말하고 “위대한 노사모가 다시 한 번 뛰어달라. 나도 다시 국민의 신임을 받기 위해 분골쇄신하겠다”며 노사모의 분발을 촉구했다.
노 대통령은 정치개혁과 관련해 “우리가 몸 바쳐 뛰어야 할, 뛰어서 키워야 할 정치인은 누구인가. 1급수(수준의 깨끗한 정치인)가 없으면 2급수라도 찾자”며 “나도 이미 상처를 입었지만 열심히 나서겠다”고 말해 내년 총선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뜻임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홍준표 전략기획위원장은 “노 대통령이 자기 지지자들 앞에서 야당을 비난한 것은 명백히 내년 총선을 겨냥한 사전 선거운동”이라며 “이는 분명히 실정법을 위반한 것이고 따라서 국회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동아일보 12월 20일자 1면).
노무현은 그날 집회에서 “민주당을 찍으면 한나라당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같은 날짜 2면에 「누가 ‘시민혁명’을 말했는가」라는 사설을 실었다.
(···) 노 대통령의 현실 인식은 실로 충격적이다. 그는 ‘시민혁명’이 진행 중이라고 했는데 지금의 국정 혼란과 그에 따른 국민의 고통과 좌절을 ‘시민혁명’의 과정이라고 해석하는 한 이 나라의 내일은 참으로 불안하고 어두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 노 대통령을 선택한 국민적 요구는 국민통합을 바탕으로 시대의 변화를 수렴해 이 나라를 질적으로 발전시키자는 것이었을 것이다.
이는 결코 ‘시민혁명’의 요구가 아니다. 법치와 시스템의 정치로 참다운 변화가 국민의 동의 하에 민주적으로 이루어지길 바랐을 뿐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런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다. 국민통합은커녕 배타적 ‘코드 의식’으로 국민의 에너지를 분열시켰다. (···)
노 대통령은 “특권과 기득권으로, 반칙의 이 세상을 주무르던 사람들의 돈과 조직, 그리고 막강한 언론의 힘을 물리치고 우리는 승리했다”고 말했다. 오늘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이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의 절반을 ‘물리칠 상대’로 보는 한 통합의 리더십은 애초부터 기대하기 어려웠던 게 아닌가.
조갑제는 12월 31일 자기 홈페이지와 <월간조선> 홈페이지에 “노 대통령의 문제 언행은 탄핵 사유로 충분하다. 국회의 야 3당이 협력하면 내일에도 탄핵이 가능하다”라고 썼다.
조갑제의 그런 주장은 2004년에 접어들자마자 야당의 호응을 일으켰다. 1월 5일 민주당 대표 조순형이 “역대 어느 대통령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선거운동에 나선 적이 없다. 노 대통령의 선거 개입은 헌법과 법률 위반으로 탄핵 사유”라고 주장한 것이다.
노무현은 2월 24일에도 야당과 보수언론이 트집을 잡을 여지가 있는 발언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24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특별회견에서 2002년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 당시 “(우리 캠프에서) 십수억 원을 썼을 것”이라며 경선 자금 중 일부가 정치자금법을 지키지 않고 조달됐음을 사실상 시인했다. (·····)
한편 노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국민이 4월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으로 기대한다”며 사실상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해 또 다시 총선 개입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즉각 “노 대통령이 노골적인 사전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노 대통령은 “국정을 책임있게 끌고 가려면 국회에 우호적 지지세력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총선에서 이기고 싶다”며 “내가 뭘 잘해서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 있다면 합법적인 일은 다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은진수 수석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노 대통령이 취임 1주년을 맞아 각종 매체를 독점하며 자화자찬 식의 업적 홍보를 하고 있다”면서 “방송사 측은 반론권 차원에서라도 야당에 방송 보도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장전형 수석부대변인도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이 TV를 통해 노골적으로 열린우리당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동아일보 2월 25일자 1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3월 3일 전체회의를 열고 대통령 노무현의 열린우리당 지지 발언이 선거법 9조(선거에 있어 공무원의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며 대통령에게 ‘선거 중립 의무 준수’를 강력히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선관위는 노 대통령의 발언이 사전 선거운동 금지를 규정한 선거법 9조엔 위반되지 않으며, 선거법 9조엔 처벌규정이 없어 별도의 제재나 처벌은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선관위의 이번 조치는 사실상의 경고 조치로 현직 대통령에 대해서는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
선관위는 이날 전체회의에서 노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TV에 생중계된 방송기자클럽 초청 특별회견에서 “국민이 압도적으로 (열린우리당을)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한 발언을 표결에 부쳐 6 대 2로 ‘위반이 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이 발언이 사전 선거운동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5 대 3으로 아니라고 결론지었다(동아일보 3월 4일자 1면).
중앙선관위의 유권해석은 노무현 탄핵을 벼르고 있던 야당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재가 되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3월 9일 국회에서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 열린우리당은 탄핵소추안의 의결을 막기 위해 국회 본회의를 원천봉쇄하기로 하고 이날 밤부터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동영 의장과 김근태 원내대표 등 소속 의원 30여 명이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날 오후 원내총무(원내대표)실 관계자들을 국회에 보내 한나라당 의원 108명, 민주당 의원 51명 등 159명의 서명이 담긴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과 노 대통령의 선거 관련 발언록 등 관련 자료를 제출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발의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국회는 이날 오후 6시 27분경 본회의에 탄핵안을 정식 보고했다(동아일보 3월 10일자 1면).
노무현은 3월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법 위반 결정에 대한 야당의 사과 요구를 거부하고 한 발 더 나아가 총선 결과에 자신의 재신임을 연계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동아일보는 3월 12일자 2면에 노무현의 ‘입장’을 거세게 비판하는 사설 두 편을 실었다.
「누구를 위한 정면 승부인가」
노무현 대통령의 어제 기자회견을 보면 지난 1년 간 우리 사회가 미증유의 혼란을 겪어야 했던 이유가 자명해진다. 국정 최고지도자인 대통령이 문제를 풀기보다는 확대, 증폭시키니 나라가 조용할 리 없었던 것이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대통령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법 위반 판정에 대한 국민의 사과 요구를 거부했다. 선관위의 판정은 일종의 ‘의견 표명’이며 따라서 자신이 이를 존중하겠다고 한 이상 따로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기대한 것은 사과의 법적 타당성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탄핵안 발의라는 극한 상황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더라도 참고, 스스로 나서서 위기의 뇌관을 제거해 달라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이런 기대를 외면하고 정면 승부를 택했다.
노 대통령은 야당 책임론을 거론함으로써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열린우리당 창당에 대한 민주당의 불만과 대선 자금 수사에 대한 한나라당의 반발이 결국 탄핵안 발의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심지어 지난 대선에서 자신이 예상을 깨고 당선된 것이 원죄라는 말까지 했다. 당이 지금도 자신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고, 그래서 오래 전부터 탄핵 얘기가 나오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
노 대통령의 현실 인식과 위기 대처 능력이 이 정도라면 불행히도 탄핵안 표결 외에 다른 길은 없어 보인다. 우리는 본란에서 그런 상황이 와서는 안된다고 누차 강조했다. 대통령은 사과하고 야당은 탄핵안을 철회해 파국은 막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 누구도 말릴 수 없게 돼버린 듯하다. 이로 인해 국민은 또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지 답답할 뿐이다.
「총선·재신임 연계 헌법 왜곡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총선 결과를 자신에 대한 재신임과 연계하겠다는 입장을 확실히 했다. 그러나 이는 5개월 간 계속된 재신임 논란을 잠재우는 해법이 되기는커녕 탄핵 정국과 맞물려 정치적 소모전을 더 확산시킬 것이 분명해 보인다.
무엇보다 헌법 왜곡이다. 사실상 위헌 판결을 받은 국민투표 방식과 마찬가지다.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 결과를 놓고 대통령의 진퇴를 결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총선이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띠는 것은 사실이지만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 임기까지 좌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런 일방적 기준을 야권이 수용할 리 없다. 총선 결과 제시한 기준을 넘어 스스로 재신임을 받았다고 판단한다 해도 두고두고 후유증이 계속될 것이다. 야당이 재신임을 인정하지 않는 마당에 국정인들 제대로 돌아가겠는가. 국민통합의 축제여야 할 선거가 국정 혼란의 불씨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노 대통령 회견 후 야권이 크게 반발하면서 국정의 불가측성은 더욱 높아지는 상황이다. (·····)
재신임 선언은 노 대통령의 측근 비리 의혹에서 비롯됐다. ‘10분의 1’ 발언도 노 캠프의 불법 대선 자금 문제가 발단이다. 이후 검찰 수사 결과 측근 비리가 줄줄이 드러났고, 불법 자금도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어섰다. 그런데도 비리 연루자를 장황하게 변호하고 자신의 기준으로 보면 ‘10분의 1’이 안 된다며 이를 오히려 선거 전략으로 활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그런 모순이 없다. 노 대통령은 총선 재신임 연계 입장을 거둬들이는 게 옳다.
거세게 불어 닥친 ‘탄핵 역풍’
국회는 3월 12일 본회의에서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농성을 하고 있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몸을 던져 의결을 막으려고 하는 장면이 텔레비전으로 생생하게 중계되었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5시 15분경 탄핵소추 의결서 등본이 청와대 총무비서관실에 접수된 즉시 노 대통령의 권한은 정지됐고 고건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헌법과 법률상의 권한 및 직무를 대신하게 됐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은 56년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헌법재판소는 180일 이내에 탄핵 심판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날 대통령 탄핵안 가결에 반발해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의원직을 총사퇴한 데다 친노·반노 단체 간의 대치도 격렬해질 것으로 보여 총선을 33일 앞두고 정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격랑에 휩싸이게 됐다(동아일보 3월 13일자 1면).
동아일보는 3월 13일자 사설(「국정 공백 최소화에 힘 모아야 한다」)을 통해 ‘대통령의 편협한 리더십’을 개탄하면서 헌법재판소가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고도 신속히 판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겸허히 수용하고 정부와 여당은 혹 있을지도 모를 국정 공백과 혼란을 막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런 사태까지 오게 된 것은 유감이지만 이제는 슬기롭게 극복하는 길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따지고 보면 노 대통령의 자업자득인 측면을 간과하기 어렵다. 좀 더 마음을 열었더라면 극한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탄핵안이 통과되던 날 아침의 한 발 늦은 사과를 보면서 국정 전체를 보는 넓은 눈과 책임감보다는 자신의 ‘소신’을 앞세웠던 대통령의 편협한 리더십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헌법재판소는 탄핵안 심리를 서둘러 가부간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한다. 대통령은 있되 직무는 정지된 비정상적 상황이 오래 가도록 해서는 안된다. 벌써부터 헌재의 결정 시점에 따라 대통령의 운명은 물론 총선도 영향을 받을 것이란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이런 말들이 나오지 않도록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고도 신속히 판정해야 한다. (·····)
여야 모두 말을 아끼고 처신을 신중해 해야 한다. 대통령의 적의(敵意)가 야당의 적의를 낳고, 야당의 적의가 다시 대통령의 적의를 부채질한 결과가 탄핵안 가결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는 극도의 양분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탄핵안 가결이 ‘구국의 결단’으로 평가되는가 하면 ‘법의 가면을 쓴 쿠데타’로 매도되고 있다.
정치가 중심을 잡지 못하면 분열은 막을 길이 없다. 탄핵안 가결을 보다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하나의 전기로 삼아야 한다. 헌재의 심판을 기다리면서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원인과 처방을 헤아려 보는 것이 그 첫 걸음일 터이다.
조선일보 3월 15일자 1면에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여론조사 결과를 전하는 기사(「2 야(野)에 ‘탄핵 역풍’ / 반대 여론 60~70% / 지지율 급락 / 이대로 가면 총선 참패」)가 나왔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가결에 반대하는 여론의 역풍이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지난 12일 탄핵안이 가결된 이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탄핵 가결에 반대하는 여론이 60~70%에 이르고, 열린우리당 지지율이 급상승, 한나라당을 15∼20%포인트 가량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두 야당조차 “지금 상태로는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참패할 것”이란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이에 따라 총선을 불과 한 달여 앞둔 시점에서, 여야의 총선 전략도 전면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여론의 역풍에 휘말린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일단 “방송의 편파보도가 심각하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또 여론의 거센 비난을 돌려놓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국민들의 불안감 해소가 필수적이라는 인식 아래,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를 전폭 지원키로 하고, 고 권한대행 체제에서는 일체의 개헌 논의를 중단키로 했다. (·····)
특히 서울 등 수도권에서 열린우리당 측과 한판 승부를 벌일 수밖에 없게 된 한나라당은 앞으로 총선 구도를 “‘노무현 대통령 살리기’ 대 ‘나라 살리기’”로 만들어, 현 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14일, “지금 이 나라는 혼란을 만들어서 헌법재판소가 정상적 판결을 하지 못하도록 간섭하는 세력과, 말없이 나라의 어지러운 모습을 걱정하면서 묵묵히 지켜보는 안정을 바라는 세력으로 양분되어 있다”며 “이번 총선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걸린 전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탄핵 역풍을 이겨내기 어렵다고 판단한 한나라당은 3월 24일 임시전당대회를 열고 ‘4·15 총선을 이끌 새 대표’로 의원 박근혜를 선출했다.
박 의원은 이날 오후 23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전당대회 대의원 투표와 전날(22일) 실시된 일반 여론조사를 합산한 결과 총 유효투표 5044 표 가운데 2614 표(51.8%)를 얻어 1453 표(28.8%)를 얻은 홍사덕 의원을 1161 표 차로 누르고 2차 결선투표 없이 대표로 선출됐다. (·····)
박 대표는 대표 수락연설에서 “당이 부패 정당, 기득권 정당이라는 오명에서 완전히 벗어나 새롭게 출발했음을 선언한다”며 “보수와 진보를 넘어 국민의 실생활에 와 닿는 실용주의 정당을 만들어 총선에서 승리하겠다”고 밝혔다(동아일보 3월 24일자 1면).
열린우리당 총선 승리와 헌재의 ‘탄핵소추안’ 기각
대통령 노무현 ‘탄핵소추안’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심판을 하고 있던 중인 2004년 4월 15일 17대 총선 투표가 실시되었다. 개표 결과 열린우리당은 국회 의석의 절반이 넘는 152석을 얻었다. 47석의 원내 제3당에서 일약 제1당으로 도약한 것이었다. 한나라당은 121석으로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훨씬 넘어섰다. 민주당은 9석(종전 62석)으로, 10석을 확보한 민주노동당에 밀려 제4당이 됨으로써 원내교섭단체도 구성할 수 없는 몰락의 길로 들어섰고, 자민련은 겨우 4석을 얻어 존립이 위태로워졌다.
열린우리당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둠으로써 노무현은 취임 이래 처음으로 ‘여대야소’ 정치 구도를 구축할 수 있었다.
동아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이 ‘대통령 탄핵소추’를 ‘무기’로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에게 맹렬히 공격을 퍼부었지만 그들이 강조하던 ‘민의의 심판’은 결국 탄핵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이었다.
동아일보는 4월 16일자 사설(「민의 존중해 상생의 정치를」)에서 “승자나 패자나 민의를 겸허히 수용하라”고 촉구했다.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승리했다. 그러나 의석 분포를 보면 한나라당과의 양강(兩强) 구도다. 13대 총선 후 16년 만에 여대야소가 됐지만 국민은 사실상 어느 한쪽의 독주도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승리에는 대통령 탄핵안 가결에 대한 다수 국민의 반대와 집권 여당이 계속 소수로 남을 경우 국정 운영의 불안정성을 염려한 민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어깨가 무거워졌다. 이제 명실상부한 다수당으로서 자기 책임 하에 국정을 끌고 가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야당을 국정의 동반자로 인정하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
열린우리당은 이제 다수당이다. 다수당으로서 무한한 책임감과 균형감각, 국가 경영의 전문성을 보여줘야 한다. 편 가르기나 코드 정치는 그만 끝내야 한다. 이념 투쟁이나 보혁 논쟁보다 국민이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 것인지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탄핵 전까지만 해도 열린우리당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반드시 호의적이지만은 않았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행여 수적 우위를 믿고 국정을 힘으로 밀어붙이려 한다면 격렬한 저항을 부를 것이고 정치적 불안은 더 심화될 것이다.
한나라당은 패배의 원인부터 겸허히 되짚어 봐야 한다. ‘차떼기’에다 민심과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 때문 아닌가. 그러나 패배가 오히려 건전하고 합리적인 보수로 거듭 날 수 있는 전기가 될 수 있다. 국민이 대여 견제의 막중한 책무를 맡긴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국정의 한 축으로서 견제와 균형을 통해 우리 정치를 한 차원 높게 끌어올리는 데 앞장서야 한다.
이 사설은 총선의 승자인 열린우리당에 대해서는 “무한한 책임감과 균형감각, 국가 경영의 전문성”을 요구하면서 패자인 한나라당을 향해서는 “패배가 오히려 건전하고 합리적인 보수로 거듭 날 수 있는 전기가 될 수 있다”고 ‘격려’하고 있다. 야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이판사판으로 대통령 탄핵을 밀어붙인 데 관해서, 그리고 동아일보가 그런 행태를 적극적으로 지지한 데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은 것이다.
4·15 총선이 끝난 지 한 달 만인 2004년 5월 14일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에 관한 선고 공판을 열고 “선거법 등을 위반했지만 파면할 정도의 중대한 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3월 12일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로 대통령 권한이 정지된 노 대통령은 헌재의 선고 시점부터 대통령 직무에 복귀했다. (·····)
재판부는 탄핵 심판 사건의 경우 소수 의견을 공개하는 것은 헌법재판소 법 위반이라며 소수 의견을 공개하지 않았으나 재판관들의 최종 의견은 6(기각 또는 각하) 대 3(인용)으로 나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이날 윤영철 소장이 낭독한 결정문을 통해 “대통령 파면은 국가적 손실과 국정 공백은 물론 국론 분열로 인한 혼란을 가져올 수 있는 만큼 중대한 법 위반의 경우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며 “노 대통령이 일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파면할 만큼 중대한 위반은 아니다”라고 기각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헌법에 의해 권한과 권위를 부여받은 대통령이 헌법을 경시하는 것은 스스로를 부정하고 파괴하는 것”이라며 “대통령 스스로 헌법과 법률을 준수함은 물론 위헌 위법 행위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동아일보 5월 15일자 1면).
동아일보는 5월 15일자 사설(「탄핵 기각, 이제 새롭게 시작하자」)에서
‘헌재의 질타’와 ‘기각 결정 면죄부 아니다’를 강조했다.
(···) 국회의 소추권 남용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 국가 최고통치자의 인식과 행태가 좀 더 진중했더라면 국민은 민생고에 국정 불안까지 겹치는 이중고를 겪지는 않았을 것이다. (····)
노 대통령이 가장 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은 헌법과 법률을 경시하고 위반한 언행에 대한 헌재의 질타이다. 대통령은 법치국가를 실현하고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헌법적 의무를 지닌다.
그런 대통령이 법을 경시한다면 우리 사회의 준법정신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이런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취임 이후 사회 곳곳에서 “법치가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
헌재의 결정문은 또한 노 대통령의 재신임 국민투표에 대해서도 헌법 수호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 점에 대해서도 대통령은 사과해야 한다. 헌법과 법이 허용하고 있지도 않은 재신임 국민투표로 그동안 국민을 얼마나 불안하게 했는가. (·····)
이 모든 혼란과 갈등이 결국은 최고통치자의 리더십 부재, 방만한 언행의 결과가 아닌가. 탄핵이라는 홍역을 치르고서도 대통령이 이를 깨닫지 못한다면 정녕 나라의 미래는 없다. (·····)
헌재의 기각 결정은 노 대통령에 대한 면죄부가 아니다. 법을 지키고 국민을 네 편, 내 편으로 나누지 말고 함께 모아서 국가 발전에 매진하라는 주문이다. 국민은 ‘노사모의 대통령’이 아닌 ‘국민의 대통령’을 보고 싶어 한다. 탄핵 사건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느냐의 여부는 전적으로 노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
노무현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당장이라도 정권을 뒤엎어야 한다는 듯이 여론을 뒤흔들었다. 그런데 정작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파면 사유’가 안 된다고 결정했는데도 동아일보는 그런 한나라당의 무분별한 정치 공세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사실을 반성하거나 독자들에게 사과하지는 않은 채 노무현에게만 ‘혼란과 갈등’의 책임을 묻고 있다.
관리자 freemedia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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